* 목회자의 설교 표절은 큰 윤리적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 부족한 설교문을 나눕니다만 아무리 급해도 이 설교문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그냥 그대로 설교하셔도 될 정도로 좋은 설교문도 아닙니다.)
2018년 5월 4일 감리교신학대학교 새벽예배 설교
제목: 하나님의 캐스팅
본문: 사무엘상 16장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1. 캐스팅(Casting)은 영화나 연극에서 배우를 선택, 선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캐스팅은 작품의 결과, 그 성패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영화로 보면 캐스팅된 배우가 얼마나 그 배역에 잘 어울리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서 영화의 몰입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아이돌 가수들의 인기를 흥행에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준 이하의 연기력을 가진 아이돌들을 영화나 드라마에 캐스팅하여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극의 진행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배역이라 할지라도 이런 잘못된 캐스팅은 생각보다 큰 악영향을 가져옵니다. 이런 것을 한국에선 미스캐스팅이라고 부르죠. 물론 지금은 연기까지 잘하는 아이돌들이 점차 많아져 논란이 좀 덜 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사울 왕이 통치하던 시절,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사울 왕을 떠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상 16장 1절 말씀을 보면 이 이야기의 배경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 - 사무엘상 16장 1절 ] 하나님께서 미스캐스팅이었던 사울을 버리고 새로운 왕 배역에 다윗을 캐스팅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이 그를 만나 캐스팅이 되었음을 알리려고 이새의 집을 방문하는 중에 있었던 이야기이지요.
3. 하나님이 캐스팅한 사람은 이새의 아들 중 하나였습니다. 첫째아들은 엘리압이었는데 사무엘이 보기에 참 멋있었습니다. 외모도 피지컬도 아주 좋았습니다. 아무 역할이나 맡겨도 다 흥행시킬 것만 같은 배우였지요. 사무엘도 엘리압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주인공이구나 싶어서 기름 부어 축복하려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사무엘에게 하십니다.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 - 사무엘상 16장 7절 ]
4. 사무엘은 용모와 키, 그러니까 외적인 요소들로 그 기준을 삼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개역개정) 라고 말씀하십니다. ‘but the LORD looks at the heart.’ (NIV)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이신 캐스팅의 기준인 것이지요.
5. 저는 여러 해 동안 이 ‘마음의 중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마음의 중심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스무 살이 다 되어서야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 삶 가운데에서 쓰임 받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아서였습니다. 조바심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다윗의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신 다윗의 ‘마음의 중심’,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마음과 의중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충(忠)’입니다. 충성, 충실의 앞 글자, 바로 그 ‘충’입니다.
6. 목동이었던 다윗.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 양을 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4절부터 35절의 묘사를 보면 다윗은 양 한 마리가 물려가면 그 양 한 마리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이었습니다. 맡은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행했어요. 그건 누가 지켜보고 있어서도,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자 같은 맹수가 양을 물어갔는데 왜 그 양을 못 지켰냐고 꾸지람할 부모가 있을까요? 이것은 불가항력적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포기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씁니다. 자기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인지했을 겁니다. 그의 목동 시절 주 무기가 돌팔매였다는 것을 우리는 골리앗과의 싸움 이야기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돌팔매 실력이 과연 다윗의 심심풀이로, 혹은 운동 삼아 취미생활로 쌓여진 것일까요? 그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돌팔매 연습을 했을 것입니다.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7. 앞서 언급한 한자 ‘충(忠)’은 마음 심(心)자와 가운데 중(中)자가 합쳐져 이루어졌습니다. 마음의 중심. 하나님은 다윗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며 중심을 이야기하셨겠지만, 저는 이 ‘충’이, 마음의 중심이 되는 그 덕목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 누구도 이 다윗의 돌멩이가 골리앗을 쓰러뜨릴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시작한 이 돌팔매 연습이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해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작은 일에, 그리고 맡은 일에 충성했던 다윗, 그 다윗을 하나님이 왕이라는 큰 배역에 캐스팅하시고 사용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8.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타고난 환경 탓을 합니다. 내 삶 가운데 주어진 일에 충실하지 못한 이유와 핑계를, 타고난 배경에서, 특히 부모님의 재력에서 찾습니다. ‘내가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난 공부를 잘했을 거야.’ ‘내가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이웃 구제에 더 힘썼을 거야.’라고 볼멘소리하지요. 그래서 한때 수저론이 유행했습니다. 금수저와 흙수저.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하나님의 포커스’입니다. 하나님의 캐스팅, 그 기준이 되는 마음의 중심은 이런 환경과 능력, 그리고 여건을 가리지 않습니다.
9.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30절에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세 종에게 각각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맡기고 여행을 다녀온 주인의 이야기지요. 이것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내보인 종을 주인은 꾸짖습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를 네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열 달란트로 만든 종들을 칭찬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우리가 보기에 합리적으로 보이는 불평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저에게도 밑천이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가 주어졌다면 저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라고 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게 주인이 하는 칭찬을 보면 이 불평은 우리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은 두 달란트 받았던 종을 칭찬하는 말씀이고 23절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을 칭찬하는 말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둘에 대한 칭찬은 동일합니다.
[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 문장이 반복되죠. - 마태복음 25장 21절과 23절이 동일합니다. 저는 이 두 구절이 한 글자도 어긋남 없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하나님의 관심이 누가 더 가졌느냐 누가 더 남겼느냐에 있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충실히 행하느냐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캐스팅하신 이유가 아닐까요?
10. 오늘의 소년 다윗 역시, 그에게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 이새조차도 사무엘이 아들이 더 없느냐고 물었을 때 ‘있긴 하지만 그 아인 그저 양치는 아이입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형들 사이에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형들처럼 피지컬이 좋지도 못했고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집안이 왕족은 커녕 귀족도 아닌 평범한 집안입니다. 게다가 막내입니다. 8형제라는 이야기도 있고 7형제라는 이야기도 있어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그가 막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유산을 물려받는 서열도 마지막이라는 의미입니다. 장자 사회였던 당시 이스라엘에서, 그에게 돌아올 몫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이 녹녹지 않았다는 겁니다. 스펙도 형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습니다.
11. 사무엘상 17장에 사울 왕이 골리앗은 날 때부터 장사라고 하며 소년인 너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돌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다윗의 대답은 압권입니다.
[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 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계시기를 원하노라 . -사무엘상 17장 37절 ]
그는 흙수저였을 수 있지만 하나님이 그의 스펙이었습니다. 그의 믿는 구석이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울 것이 없었겠지요. 충실하게 갈고닦은 노력이 하나님과 잘 맞춰진 환상의 호흡과 더불어 결국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립니다. 타고난 장사도, 부하를 거느린 권력자도 아니었지만, 그는 주어진 환경에서 하나님께 기대어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12. 우리 각각의 삶은 한 편의 영화와 같습니다. 그 영화의 스토리 플롯, 제작비용, 등장인물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모든 영화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내용,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재미없겠습니까? 우리 삶이라는 각각의 영화에는 각각의 주제가 있고 각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작품의 감독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삶 가운데 펼쳐지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하셨고 목적을 가지고 귀하게 부르셨습니다. 이제 그 영화가 일류영화가 되느냐, 삼류영화가 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배우와 감독의 호흡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과 착착 호흡을 맞춰나가는가, 얼마나 가까이 발맞추어 걷느냐에 따라 이 영화의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환상의 호흡으로 하나님의 캐스팅을, 미스캐스팅이 아닌 최고의 캐스팅으로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그 마음에 꼭 합한 사람으로 인생의 주인공 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삶 그 영화에, 오늘이라는 또 한 장면을 우리에게 맡기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가 책임 있게 오늘 하루를 살아내길 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시작의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처럼 하루의 끝까지, 그리고 계속해서 주어지는 매일 삶, 장면들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고 호흡하길 소망합니다. 아담과 동산을 거니시던 하나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범죄한 아담이 부끄러워 숨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 하나님의 캐스팅을 최고의 캐스팅으로 만들어가길 소원하며, 마음의 중 심을 보시는 하나님, 그 마음에 꼭 합한 사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길 소원하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김주평 목사 설교 / 하나님의 캐스팅 / 사무엘상 16장 7절 / 2018년 5월 4일 감리교신학대학교 새벽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