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자의 설교 표절은 큰 윤리적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 부족한 설교문을 나눕니다만 아무리 급해도 이 설교문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그냥 그대로 설교하셔도 될 정도로 좋은 설교문도 아닙니다.)
* 새벽기도회 설교는 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한 짧은 설교입니다.
논리적인 강해와 학문적인 주석보다는 기도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전개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023년 10월 31일 아틀란타한인교회 새벽예배 설교
오늘의 찬양
: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폭우와 범람으로 물난리가 나는 그 홍수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마실 수 있는 물이 없습니다. 가치관과 문화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마실 물은 오직,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뿐이심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 예레미야 28장 1-17절
1.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4.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하니라
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
7. 그러나 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잘 들으라
8.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
10.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11.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12.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기를
13.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
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17.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제 이름은 김주평입니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으시지요?
사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작성했던 설교원고의 첫줄은 원래 ‘여러분, 제 이름이 무엇입니까?’ 였습니다. 다 써놓고 읽어보면서 퇴고를 하면서 ‘제 이름은 김주평입니다.’ 로 바꾸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제가 ‘제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여쭤보면 여러분 중 누군가가 ‘하광현 목사님’ 그러실까봐 바꿨습니다.
많이들 저랑 하광현 목사님을 헷갈려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마 둘다 젊고 온지 얼마 안 되서 그런 것 같아요.
새벽에 하광현 목사님이 설교하신 날이면 제가 참 많은 응원을 받습니다. 특히 샬롬대 할머니 권사님들께서 많이 응원해주세요. ‘오늘 설교가 너무 은혜 되었습니다.’ 그러십니다. 처음엔 제가 ‘아, 그분은 제가 아니라 하광현 목사님이세요’라고 열심히 대답했었거든요. 그런데 하도 많이 물어보시니까 어느 날 또 ‘목사님 설교 너무 좋았어요’ 하시길래 그냥 ‘ 감사합니다’ 그랬습니다.
제 이름은 하광현이 아니라 김주평입니다.
제 이름 ‘周平’은 한자로 ‘두루 주’자에 ‘평평할 평’자로 씁니다. 뜻은 두루 평평하게, 두루 평등하게 라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판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으신 이름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이 주평의 의미를 ‘주님의 평화’라는 뜻으로 여기셨다고 해요. 아버지의 바램보다 어머니의 기도가 더 강하셨는지 저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지금 여호와 샬롬의 사자가 되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명실상부 이름값을 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 뜻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그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에는 두 이름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레미야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 선지자 하나냐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예레미야 28장은 어제 만난 27장의 내용과 이어집니다. 28장이 27장의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와 징계’라는 메시지를 이어받고 있어요. 그런데 어제 이미 다뤘으니, 오늘은 특별히 ‘이름’이라는 소재에 주목하여 새로운 교훈을 얻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예레미야는 원래 쓰여진 언어인 히브리어 원어로 ‘예르미야후’입니다. 예르미야후는 야훼, 즉 ‘하나님께서 일으키셨다,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라는 뜻입니다.
반면 하나냐라는 이름은 은총을 베풀다라는 뜻의 ‘하난’과 여호와를 줄여쓸 때 적는 ‘야’가 결합된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럼 둘 하나님의 세우심과 하나님의 은혜, 이 두 이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며 예레미야와 하나냐는 과연, 그 이름 값을 하며 살았는지를 함께 확인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때에는 유다가 바벨론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유다를 정복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브온 앗술의 아들 하나냐라는 선지자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반박하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냐는 에레미야가 예언한 것과는 달리 이 심판이 길지 않을 것이라며 2년안에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으시고 유다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고 있던 예레미야는 이데 다시 반박하며 2년안에 이 심판이 끝날 것이라는 하나냐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껏 하나님이 세우시고 보내셨던 예언자들의 말이 다 이루어져야 끝날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냐는 마치 사람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듯, 예레미야의 목에 걸린 멍에를 벗기고 꺾어 버립니다.
어제 말씀을 들으신 분들은 이 멍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멍에는 바벨론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상징하고 그것을 보면서 그 의미를 떠올리고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냐는 예레미야가 자신의 예언을 반박하자 하나님이 명하셔서 쓰고 있는 그 멍에를 자기 마음대로 벗겨버리고 심지어 꺾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무관하게 자기 맘대로 해석한, 아니 어쩌면 자기 마음대로 상상한 말씀을 전합니다.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버리라 하셨느니라!’
제법 호기롭고 제법 선지자 흉내를 잘 내고 있습니다. 이 예언에 어떤 사람들은 위로를 얻었을는지도 모릅니다. 듣는 사람들의 호응을 자아냈을 겁니다.
‘아 예레미야는 저주나 다름없는 예언으로 우리 맘을 근심하게 하고 공포에 떨게 했는데 하나냐는 다르네, 그 이름처럼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것을 예언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을는지도 몰라요. 그러면 하나냐는 이름값을 제대로 한 것일까요?
그때 예레미야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이 상황에 제가 예레미야였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확신이 있었다면 더더욱 저는, 감정이 욱해서 더욱 논리적인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하나냐와의 이 논쟁에서 이기려 했을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만, 걸려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 게 저의 모자란 신념이니까요. 저도 참 이름 값 못하지요. 평화를 말 해야하는 데 누가 부당하게 절 억압하고, 억울하게 비난하면 피하지 않고 끝까지 돌파해서 결론을 내곤 합니다.
제 이름은 주평입니다. 이름값 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11절을 보니 예레미야의 반응은 저와 사뭇 달랐습니다.
‘에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이 반응은 무엇이었을까요?
‘논리적으로 이야기해도 알아 듣질 못하니 도무지 이길 수 가 없다. 듣는 귀 있는 자만 들어야지 뭐.’ 이런 무시의 반응이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12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12.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기를)
예레미야는 그저 다시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떨 때 응답을 받습니까? 무엇을 할 때 응답을 받습니까?
마트에서 장보다가 응답받습니까? 아니면 뭐 회사에서 졸다가 응답받습니까?
아니요,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답받는 줄로 믿습니다.
‘어? 저는 똥싸다가도 응답받는대요?’ 그러실 수 도 있어요. 네, 화장실에서 하나님을 묵상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시는 하나님, 할레루야? 구하면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갔다는 것’을 ‘기도의 길’로 나아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나름의 상상입니다만 아마도, ‘하나님, 어찌할까요?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지말라고 조금 전에 선포했는데, 백성들이 그 말에 현혹되고 있습니다. 어찌하오리이까?’
이런 기도가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은 거기에 응답하십니다.
13절,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
14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하나냐에게 전합니다.
15절부터 16절,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이 말이 이루어져서, ‘하나냐가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라고 기록되는 것으로 오늘 말씀 예레미야 28장이 갈무리 됩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심이라는 뜻의 예레미야,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라는 뜻의 하나냐.
둘 중 누가 이름 값을 해냈습니까?
오늘 말씀은‘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라고 하면서 하나냐의 출신과 이름을 밝혀 보여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기브온앗술의 아들~ 그랬으니 하나냐의 아버지는 기브온앗술이구나 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띄워쓰기를 좀 해야해요. 기브온이라는 지역 출신인 앗술의 아들입니다. 하나냐가 기브온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한 10km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지파로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고, 특별히 기브온은 베냐민 땅에 있는 레위인들의 성읍이에요.
여러분 이스라엘에는 몇 개의 지파가 있죠? ‘열두지파’, 라고 반사적으로 대답하셨을 텐데 아닙니다. 사실 열 세 지파입니다. 그중 땅을 분배받은 지파가 열두개,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되어 열두지파에서 속하지 않는 레위지파가 있는 것입니다. 열두지파 더하기 레위지파. 이렇게 열 세 개에요. 레위지파는 제사와 같은 하나님의 일을 담당합니다. 그래서 따로 땅을 분배받는게 아니고 열두 지파에 나뉘어져 살면서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된거예요. 그러기 위해 그들의 거처로 각 지파안에 레위인들의 성읍을 만들어줍니다. 여호수아 21장에 레위인의 성읍 48개의 이름이 열거되는데 – 사실 정확히는 47개에요. 가드 림몬이라는 도시가 두 번 나와서 그렇습니다. 성경의 오류는 아니고, ‘가드 림몬’이라는 성읍이 단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경계에 있는 도시라서 한번은 단지파, 한번은 므낫세지파로 중복되어 기록되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너무 많은 성경공부를 하시게 돼서 머리가 아프실텐 데 –중요한 것은 하나냐의 출신이라는 기브온이 바로 그 47개의 레위인의 성읍 중 하나라는 거에요. 그 말은 곧 하나냐의 출신이 레위지파라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선지자로 불리며 그 말에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제사장 출신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 기브온은 그 레위인들의 47개 성읍 중에 꽤나 영향력 있는 레위인들이 모여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전 여호와의 성막이 있던 곳이 바로 이 기브온이거든요.
정리하면 결국 하나냐가 제사장 집안 중에도 매우 영향력 있는 집안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예레미야의 출신은 어디인지 아세요? 예레미야도 레위인의 47개 성읍 중 하나인 아나돗 출신입니다.
그런데 아나돗은 솔로몬에게 쫓겨난 아비아달의 후손들이 살던 곳입니다. 실제로 에레미야는 그 쫓겨난 아비아달의 자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냐는 유력한 제사장 가문 출신이고 예레미야는 몰락한 제사장 가문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출신배경이 다른 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게다가 예레미야는 듣기 불편한 말을, 하나냐는 듣기 좋은 말을 전해줍니다. 사람들은 어느 쪽을 지지했을까요?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이름대로 예레미야는 세워지고, 하나냐는 오히려 은혜와는 거리가 먼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들의 결정적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둘다 제사장이고, 둘다 선지자라고 불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웠고, 하나냐는 하나님의 은혜를 무너뜨렸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냈고, 하나냐는 입에만 달콤한 말로 은혜를 빙자하여 거짓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드러내 하나님께 영광올렸고, 하나냐는 이름 값을 못하고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살아갑니까?
저와 여러분은 각각 출신이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에게는 공통의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크리스찬,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스스로도 크리스찬이라고 말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과연 이름 값하며 살아가고 있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냐는 하나님의 뜻을 받은 양 거짓으로 예언하며 자신의 이름인 ‘하나님의 은혜’를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세우신 예레미야는 말씀을 세우고, 하나님의 뜻만을 세우며 그 이름을 살아냈습니다.
이처럼 우리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 말씀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마치 산 위에 있는 동네 사람들이 그 산 아랫사람들에게 훤히 보여지듯, 우리에게 이름 붙이는 그들에게 훤히 보여지는 삶을 삽니다. 우리가 가슴에 십자가라는 은혜를 붙이고 사는 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늘 드러나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 이름처럼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했을 때, 명실상부하지 못하고 이름 값 못하고 살아갈 때, 그들에게 더 크게 비난받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여러분, 예레미야가 그 패역한 세대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간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는 삶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 것처럼, 우리 또한 이 세대 가운데 악한 유행과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르며 명실상부 크리스찬으로서의 이름값을 하며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우리도 예레미야와 같이 이제 자기의 길, 우리의 길을 가야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가 우리의 길인 줄로 믿습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기도인도
1.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 하나님 우리가 허락하신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크리스찬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아가길 결단하오니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합시다.
2. 할로윈데이를 홀리윈데이로 바꿔내는 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예레미야가 그 패역한 세대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간 것처럼 우리 또한 이 세대 가운데 악한 유행과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르며 명실상부 크리스찬으로서의 이름값을 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은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 악한 유행과 가치관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그 유행을 따르게끔 유혹합니다. 영적으로 좋지 못한 귀신과 악마를 묘사한 장식과 분위기를 할로윈데이라는 이름으로 즐기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교회에서는 우리 아이들의 영적 건강을 위하여 이를 대신할 할렐루야 나잇이 진행됩니다.
바라기는 할렐루야 나잇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길 청합니다. 기도하실 때, 하나님, 오늘 진행되는 순서들 가운데 우리 아이들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헬러윈데이이 아닌 홀리 윈 데이가 선포될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이런 기도제목 가지고 합심하여 중보합시다.
김주평 목사 설교 / 명실상부 / 예레미야 28장 1~17절 설교